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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삼성 반도체 노동자 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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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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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노동자 또 사망
 
[기고]뇌암에 걸린 그녀에게 ‘증거’ 대라는 삼성반도체

[반도체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⑥-마지막]이윤정

르포작가 희정


“누구도 그들이 이런 짓을 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들은 우리를 한 가족이라고 했죠.”

IBM 반도체 노동자 케이스 버락은 말했다. 그는 IBM에서 일한 대가로 고환암에 걸렸다. 20년 후, 반도체 주요 수출국인 한국에 수많은 케이스 버락이 생겨났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암과 같은 희귀질환에 걸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 직업병 피해 수는 150명에 다다른다.


이윤정(1980년생, 여성. 1997년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6년간 고온 테스트 업무. 퇴직 후 2010년 뇌암 판정) 외 150여 명

윤정 씨는 아프다

그녀는 종일 눈을 감고 있다. 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눈 뜰 기운조차 없다고 한다. 누군가 문병을 오면 간병인이 그녀의 눈꺼풀을 들어 올려준다. 그제야 그녀는 눈동자를 움직여 사람을 알아본다. 때로 간호사가 와 윤정 씨에게 손을 움직여 보라, 발을 움직여 보라고 한다. 반응이 없으면 간호사는 윤정 씨의 손과 발을 꼬집는다. 자극을 받은 손발이 그제야 미세한 움직임을 보인다. 언젠가 저 움직임마저 멈출지 모른다.
윤정 씨를 처음 만났을 당시, 의사는 그녀에게 시한부 일 년을 선고했다. 반올림 사람들은 윤정 씨에게 의사들은 최악의 상황으로 진단을 내린다고 했다. 윤정 씨는 그 말을 믿고 싶어 했다. 그러고 일 년이 지났으니, 그녀는 어쨌든 시한부 기간을 넘겨 산 셈이다.

그녀와의 첫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녀가 몹시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뇌를 연 대수술을 받은 그녀는 손님 자체가 반갑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병이 직업병인지 묻는 질문은 피하고 싶었다. 남은 생을 편히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얼마나 거대한지 안다고 했다. 저들이 순순히 인정할리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싸움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삼성반도체에 다닌 6년을 떠올리는 일은 버겁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 6년에 대해 말했다.
“힘들었다는 생각 밖에 안 나요.”
밤낮없이 일했다. 자리에 한번 앉지도 못하고 반도체 칩을 기계에 넣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다. 기계를 열면 고약한 냄새가 났다. 타버린 칩에서 나온 검은 분진이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그것들의 성분이 무엇인지, 타버린 화학물질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검사조차 되지 않았다. 일개 노동자인 윤정 씨가 신경 쓸 수 없는 문제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불량이 나면 기계 알람은 빽빽 울어댔다. 시간이 지체되거나 불량을 잡아내지 못하면 사유서를 쓰고 잔업을 해야 했다. 그때 윤정 씨 나이, 겨우 열아홉이었다.

그녀는 억울하죠, 라고 했다. 직업병이라 인정받을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일이 커질 것을 알면서도 산재신청을 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다 멋모르는 애들 데려다가……. 삼성이 약아 빠진 거 같아요.”
그녀는 억울했다. 그럼에도 말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할 일을 다 하고 가니까요.”
윤정 씨는 자신이 할 일이라 칭한 가족을 두고 떠날 준비를 했다. 인생을 되짚으며 그녀는 말했다.
“인생이란 게 이상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니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녀가 말한 사람들은 <반올림> 소속 활동가들이었다.

증거가 없는 싸움년 전 아직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기 전, 산업의학 분야 전문가들은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알지 못했다. 반도체 직업병에 대한 의심은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됐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딸을 둔 황상기 씨는 언론사와 사회단체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자신의 딸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아무래도 회사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당시 그가 가진 유일한 증거는 딸과 2인 1조로 일한 선배가 같은 병에 걸린 사실 뿐이었다.

전문가들은 망설였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증거가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국내에 도입된 지 40년도 되지 않은 첨단산업 반도체에 대한 연구 자체가 거의 없던 것이다. 직업병과 반도체 산업의 연관성은커녕,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설비와 화학물질에 대한 연구조차 미비했다.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을 하던 단체들도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보수적인 판정을 내리는 근로복지공단이 생소한 분야의 직업병 인정을 할 리 없다고 했다. 게다가 상대는 삼성이라는 대기업이었다. 승산이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당당했다. 반도체 공장에 겨우 6명이 백혈병에 걸린 것이 무슨 문제냐고 했다. 삼성반도체에 다닌 사람만 수만 명이라고 했다. 6명의 백혈병은 우연이라고 했다.

승산이 없음에도 몇몇 사회·인권단체들은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인 <반올림>을 만들었다. 그러자 백혈병에 걸렸다는 반도체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백혈병만이 아니었다. 희귀 질병자들의 제보도 속출했다. 현재 이들의 수는 우연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증거를 가져와라”

백오십 명에 가까이 이들이 삼성반도체에서 일을 하다 병에 걸렸다고 제보를 해왔다. 이들 중 일부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을 공개하길 꺼려했다. 윤정 씨처럼 몸이 아픈 이들이었다. 고민하고, 억울해하고, 신경을 쓰고 나면 몸이 더 아팠다. 그래서 두려워했다. 용기를 낸 소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적었다.
그들은 반도체 회사에서 일을 했다. 작업장에는 늘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일은 많았다. 높은 기압에서 마스크와 방진복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하는 일은 쉽게 지쳤다. 고과점수와 성과급을 앞세운 경쟁은 일상화 됐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잠이 부족했다. 자주 머리가 아팠고, 소화불량에 걸렸으며, 피부병이 생겼다. 월경이 불규칙하거나 끊겼고, 여직원들은 유산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연재하는 동안,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적인 호소 말고 과학적인 증거는 없느냐. 나는 대답했다. 그들에게는 증거가 없다고.
19살 반도체 공장에 처음 발을 디딘 이들에게 증거는 없었다. 안전교육이 없어도 이상한지 몰랐다. 화학물질 냄새가 진동을 해도,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인체에 유해할 것이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일하다 팔다리가 잘리는 것만이 산업재해인 줄 알았다. 직업성 암은 꿈에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사용한 물질이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조차 반올림을 만나고 알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증거는 가지고 있는 이는 아마도 그들을 고용한 회사일 것이다. 화학물질 성분이 무엇인지, 그 성분들이 인체에 안전한지, 이 모든 정보는 회사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았다.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신청을 모두 불승인 처리했다. 공단은 함부로 직업병 인정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위암, 유방암과 같은 질병은 사람들이 흔히 걸리는 암이기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것이 병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웨게너씨육아종이나 종격동암 같은 희귀질병은 연구된 것이 없어 원인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흔한 병은 흔해서 직업병 인정이 안 되고, 희귀한 병은 희귀해서 직업병 인정이 안 된다는 소리였다.

노동자들이 항의를 하면, 근로복지공단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증거를 가져와라.” 이에 반올림 소속인 공유정옥 산업의학 전문의는 한탄했다. “저들이 증거를 내놓으라 하는 이유는 증거를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그들이 가진 증거

직업병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병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증거를 찾으려 다녀야 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사실들을 밝힐 수 있었다. 벤젠과 같은 발암물질이 실제 반도체 공장에 사용되고 있었으며, 사용되는 화학물질 대부분이 성분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자 삼성은 국제 컨설팅 기업인 <인바이런>에 작업환경 조사를 맡겼다. 반도체 회사의 돈을 받은 기업이 반도체 회사의 문제점을 밝히는 조사를 했다. 이 몹시 공정한 조사는 당연하게도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냈다. 삼성은 결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돈 없고 힘없는 직업병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경악 밖에 없었다. ‘증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지켜봐야 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증거를 가져오라는 정부와 회사를 향해 한탄했다.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더 어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시 대답하고 싶다. 일을 하다 병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했고, 이 기록이 그들의 증거라고.

출처: 민중의 소리, 퍼온곳  이종격투기